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20-10-06 12: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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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위협 받는 문과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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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북부의 판자촌에 사는 주부둘은 저녁이면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는 것이 습관이다. 어머니들은 배가 고파 보채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밥이 될 거다"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기다리다 그냥 잠들기를 기다린다.  


  - 탐욕의 시대 中 (장지글러)


  부시와 네오콘이 일으킨 전쟁이 실은 거대 군수산업과 벌인 합작품임과 동시에 '신흥 봉건제후'들이 획책하는 포성을 고발하는 이 책에서 나는 뜬금 없게도 어릴 적 수험생활을 떠올렸다.


  계획대로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좋은 대학교에 가야 했다. 


  가야만, 나의 자존감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나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그로 인해 지원되는 용돈과 대접으로 제2의 도약을 노려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 하루 8시간씩 게임을 하고 만화를 그리며 작곡프로그램을 갖고 노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아침에 늦게 일어나 졸릴 눈을 비비며 피파를 즐기고 반신욕을 했다. 슬슬 배가 고프자 과자를 하나 집어들고 배를 깐 뒤 만화책을 좀 보다 집을 나서려는 타이밍에 거짓말같이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다독였다. 


  "조금만 자면 공부가 더 잘 될 거다"라고. 이대로 나가봐야 졸린채로 공부하고, 이거야말로 비효율의 극일 것이라고.


  그래놓고 침대 위에 누워,

  알람을 10분으로 맞추어 놓고, 

  금방 일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로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심지어 머리에 바른 왁스도 그대로 둔 채 


  깊은 잠(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어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역시 날이 무더우니 공부는 밤에 해야 할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늦잠을 나만의 정규 프로그램에 섭외하였다. 그러면서도 되뇌었다.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다." 


  이미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 고시를 패스한 친구들은 여유있게 나와 술한잔을 기울였지만 나는 위축되는 일이 없었다. 왜냐면,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한 저 빌어먹을 지푸라기 덕분에 나는 아주 어렵게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적당한 기회에 후술하기로 한다. 


  어쨌든, 나를 안심시키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에게 나를 위축시키지 않는 저 마약 같은 지푸라기는 내가 한 과정을 끝났다 해서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사실 나의 때는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시간이고 나의 삶인 걸 남들은 몰라도 나는 사실 안다. 어려운 건 인정하는 것이다. 수년 전 꿈꿔왔던 지금 내 삶이 이와 같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자세.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


  오늘도 늦게 일어나 자신의 계획을 또 한 번 반절 날려버렸음을 탓하는 어느 수험생에게, 자존감을 위협받는 어느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때는 이미 와 있다. 인정하자. 그리고 이제 밖을 나서라. 


  햇살은 여전하고, 바람은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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