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여 [1325791]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4-10-27 23: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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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문법 이야기(특수형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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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그렇지만 어떤 정의를 만들어도 그 정의에 딱 맞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형태소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strawberry와 같은 단어는 어떻게 분석될까? straw는 ‘밀집'이란 뜻이 있지만 ‘-berry’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straw와 berry의 의미를 합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딸기'란 의미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과일 이름에 -berry가 매우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학자들을 이를 형태소로 분류한다. cranberry 같은 경우도 cran과 berry의 의미가 합해져서 전체의 의미가 생긴 것이 아니다. uncouth와 unkempt의 *couth나 *kempt 같은 독립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lukewarm과 ruthless를 보면 warm과 less는 존재하지만 *luke와 *ruth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인 형태소들과는 다른 경우다. 자립 형태소든 의존형태소든 그 배합이 자유스럽다. 자유스럽다는 것은 특정한 한두 형태소하고만 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용되는 범주 안에서 아무 형태소하고나 자유로이 배합할 수 있음을 말한다. 즉 명사 복수 형태소 ‘-s’는 동사에 붙을 수 없지만 가산명사라면 어떤 명사와도 붙을 수 있고, ‘-ed’는 불규칙이 아닌 이상 아무 동사와 결합할 수 있다. 자립 형태소도 마찬가지다. boys, boyish, boyhoood, boyfriend, unboyish처럼 여러 형태소와 결합할 수 있다. 그러나 berry, kempt, couth, luke와 같은 형태소들은 그렇지 않다. ‘unkempt’가 ‘단정하지 못한'이란 뜻이고 ‘un-’은 부정접두사임이 분명하니까 ‘kempt’가 ‘단정한, 깨끗한'을 의미하는 형태소라고 할 수 있을까?  ‘warm’은 ‘따뜻한'이고 ‘lukewarm’은 미지근한(tepid)니까 ‘luke’는 ‘덜'이란 뜻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까? ‘lukecold(덜 찬)’, ‘lukehot(덜 뜨거운)’ 등의 말들이 영어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이렇게 한 형태소하고만 결합해서 나타나는 형태소를 유일형태소(unique morpheme) 또는 크랜베리 형태소(cranberry morpheme)라고 한다. 


    국어학계에서는 불구형태소, 불완전 어근, 비자립적 어근 등으로 불리며 제한된 형태소와만 결합하고 품사가 명백하지 않은 어근을 이 범주에 넣는다. 보슬비의 보슬, 아름답다의 아름, 착하다의 착, 등이 있다. ‘보슬비'의 뜻이 ‘바람 없이 조용히 내리는 비'라면 왜 *보슬눈, *보슬안개 같은 말이 없을까? ‘착'이 ‘착함'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왜 ‘착'이 명사로 쓰이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음운론과 형태론의 차이를 보여준다. 즉 음운론에 대한 화자의 지식 중 하나는 어느 음운이 자국어의 음운인가를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형태소로 말하자면, 형태소의 경계가 어디 있고 형태소의 뜻이 무엇인가를 어느 때는 자국어의 화자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원래는 분명했던 어원(etymology)이 이제는 모호해진 경우와, 또 하나는 무더기로 오래 전에 들어온 외래어가 이젠 자국어화(nativisze)되었지만 그 어휘구조(즉 형태구조)에 대해 자국어적인 의식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예외 현상들은 언어가 변해오면서 새로운 형태소가 도입되거나 기존의 형태소가 사라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 지금은 그러니까 공시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가령, ‘아름답다'의 ‘아름'은 유창돈(1971)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알-(선하다, 좋다)’라는 용언에서 파생된 명사 ‘아ᄅᆞᆷ’으로 이 ‘아ᄅᆞᆷ’과 형용 파생 접미사 ‘-답-’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로 보는 게 적절하다. 참고로 '아리땁다'의 '아리'도 같은 뿌리에서 왔다. 


    프랑스어(궁극적으로 라틴어)에서 들어온 영어 어휘들은 자국어화된 단어들의 형태소 분석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맨 왼쪽 종렬의 접두사들이 맨 위 행렬의 어간처럼 보이는 형태소와 배합해서 산출된 단어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의 접두사와 어간은 un-happy, un-cover의 경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Un-은 접두사이고 happy, cover 등은 의미가 뚜렷한 자립형태소인 반면, -mit, -fer, -sume, -ceive, -duce 등은 자립형태소가 아니며, 그 뜻도 언중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duce가 라틴어 dūcēre ‘인도하다'에서 온 어근으로 위에 든 단어들뿐만 아니라, introduce, produce, educate 등의 단어에도 그 형태와 의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전문가가 아닌 언중이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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