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국어의 각자병서 이야기
ㄲ, ㄸ, ㅃ, ㅉ, ㅆ, ᅘ, ᅇ, ᄔ
‘ㄲ~ᅘ’은 전탁자인데 고유어에서 단독으로 쓰인 것은 ㅆ과 ㅉ, ᅘ뿐이고 나머지는 고유어에서 된소리 표기로 쓰이긴 했으나 제한된 환경에서만 쓰였다. 동국정운의 서문에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中國無異, 而於字音獨無濁聲”라는 문장이 있는데 “우리 말소리의 청탁의 구별은 중국과 같으나 (우리나라) 한자음에만 탁성이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 말소리에는 있으며 우리 한자음에는 없는 소리 계열은 경음 계열이므로 전탁음을 표기한 각가병서 'ㄲ, ㄸ, ㅃ, ㅉ, ㅆ'은 경음을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각자병서가 경음을 나타냈다면 어째서 아래와 같이 제한된 환경에만 된소리가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3)
가. 홀 껏, 올 ᄄᆞᆯ, 여흴 쩌긔, 쉴 ᄊᆞᅀᅵ
나. 둡ᄊᆞᆸ고, 조ᄍᆞᆸ고
다. 엄쏘리, 니쏘리, 눈ᄍᆞᅀᆞ
라. 쓰다, 일쯕, 말ᄊᆞᆷ
(3가)는 관형사형 어미 ‘-ㄹ'과 함께 적히는 된소리 부호 ‘ᅙ’가 나타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예인데 이를 바탕으로 각자병서는 이때도 된소리로 기능했다고 추정한다. (3나)는 ‘둪ᄉᆞᆸ고, 좇ᄌᆞᆸ고’의 음소적 표기, (3다)는 사이시옷이 후행 음절로 옮겨 적힌 예시로 이때 역시 된소리로 기능했다고 해석된다. (3라)는 그외의 경우로 ㅆ과 일부 ㅉ만이 해당된다. 즉 이 당시 각자병서 표기만 보면 ㅆ과 일부 ㅉ을 제외했을 경우 된소리는 관형사형 어미 뒤에서만 실현되었다는 얘기로 흐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학자들은 ㅅ계 합용병서도 된소리를 나타냈다고 보고 경음의 분포를 설명한다.
ᅘ, ᅇ, ᄔ은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
4)
가. ᅘᅧᄃᆡ, 치ᅘᅧ시니, 도ᄅᆞᅘᅧ
나. ᄒᆡᅇᅧ, 쥐ᅇᅧ, ᄆᆡᅇᅭᆫ, 메ᅇᅲᆫ
다. 슬ᄔᆞ니, 다ᄔᆞ니라
(4가)의 ᅘ은 ‘y’ 앞에서만 실현되는데 ‘ㅎ'의 전탁음 즉 ‘ㅎ'이 엉긴 소리(제자해에서 “凝”이라고 기술)이다. ᅘ은 ㅎ을 세게 발음하는 [ç]나 [x]로 추정된다. 각자병서는 원각경언해(1465) 이후로 자취를 감추지만 17세기에 ‘ᄻ’이란 표기로 부활한다. (4나)의 ᅇ도 ‘y’ 앞에서 쓰이는데 ㅇ의 된소리라기보다는 긴장된 ‘y’음을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다)의 ᄔ은 ‘슳ᄂᆞ니, 닿ᄂᆞ니라’의 ㅎ이 동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ㄴ'이 오래 지속됨을 표시하는 것이며 그 발음은 [n:] 정도일 것이다. 음성학적으로 ㄴ의 경음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ᅇ과 ᄔ을 따로 음소로 보지 않고 변이음으로 처리한다. 훈민정음 언해의 ‘ᄒᆡᅇᅧ’가 다른 문헌에서는 모두 ‘ᄒᆡ여'로 실현되는데 당시의 사람들에게 ㅇ이나 ᅇ이나 별반 큰 발음 차이가 인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ᄔ 역시 별개의 음소의 지위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각자병서의 표기는 원각경언해(1465)에서부터 쓰이지 않았는데 이는 경음 계열이 국어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표기에서만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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