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이 수험생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2)
0. 지난 번에 적은 내용 중에 좀 누락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적어봅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1. 각 학교마다 정원이 10% 이상 증가한 경우, 의평원에서 의학교육인증을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현재 증원이 확정된 학교 30여곳은 모두 재인증 필요 대상입니다.)
2. 문제는 그 인증 과정이 마냥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 때려내듯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초의학과목 및 임상의학과목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 뿐만 아니라, 교육에 필요한 교수 자원, 실습 자원 (ex. 대학병원, 병상, 기타 실습 자재 등), 강의 자원 (ex. 강의 공간 등) 등을 모두 성립해야 이 인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한국 의평원의 인증기준의 경우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바탕으로 만든 기준표입니다.)
3. 그런데, 사실 증원 이전에도 일부 학교들은 이 의평원 인증 기준을 정말 '턱걸이' 수준으로 통과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증원 이후 의평원 재인증 평가가 가능할지 각 대학별로 사전 조사를 했었는데, 증원이 확정된 30여곳 학교 모두 재인증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4. 재인증을 위한 사전계획서는 올해 11월까지 각 의과대학에서 의평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즉, 이제 4개월 정도 남은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아직 대학 차원에서도, 정부에서도 전혀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사전계획서 제출 기한 이전에 미리 예산안을 짜고 지원책을 마련해서 이런 계획으로 운영할 것이다라고 밝혀야 하는데, 이 부분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단 뜻입니다.)
5. 따라서, 사실상 올해 의평원 인증은 통과하기 어려운 상태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6. 그럼, 의평원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먼저, 제일 중요한 문제는 의사 국시 응시 자격의 문제입니다. 의평원 인증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해당 학교의 재학생들에겐 국시 응모 자격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서남의대가 의평원 인증에서 떨어져 이 문제에 걸렸었고, 그 당시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육부의 중재에 따라 인증 평가에 떨어지기 전에 들어온 학생들은 국시 응시 자격을 주고, 이후의 학생들에겐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물론 박탈된 학생들은 서남의대 폐교 이후 다른 학교로 자동 편입되면서 마지막엔 무사히 국시를 치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의평원 재인증 결과는 '2월'에 나옵니다. (통상적으로요) 정시 결과는 1~2월에 걸쳐 나오게 됩니다. 즉 앞선 서남의대의 선례로 비추어 보았을 때, 12월에 이미 결과가 나오는 수시 합격생들은 국시 응시 자격이 그대로 부여될 가능성도 있지만, '재인증 결과가 발표된 이후의 정시 추가 합격 학생들은 국시 응시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습니다. (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건 확정이 아니니까요. 서남의대 사태 때도 정확한 법적 절차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부가 임의로 해결한 셈이죠.)
8. 단지 국시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두 번째 우려는 '의대 정원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단 점'입니다. (역시 '예측'일 뿐이니, 일단 그렇구나 정도로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이대로 가면 전 학년 유급은 일단 확정적입니다. (정부는 I (incomplete) 학점을 만들어서 F 학점을 매기는 것을 봉쇄한다고 했지만, 이건 단순 지침일 뿐, 결국 결정하는 건 각 의과대학의 교수 재량입니다. 아마 교수님들 역시 이미 물리적으로 더는 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직시하고 계실 것이기에 대부분 F로 위시된 유급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2) 그러면 올해 들어온 24학번 예1 학생 3000명도 모두 그대로 내년에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3)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4500명을 모두 온전히 뽑게 되면 문제가 되겠죠. (그러면 그 학년은 총 '7500'명이란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되니까요.) 의대 뿐만 아니라, 모든 단과대학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한 학년의 인원이 2배 이상 늘어나면 사실상 운영이 어려울 것입니다.
4) 만일 7500명이 계속 가게 된다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예1에서 학년이 끝나는게 아니니, 결국 본4까지 계속 7500명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여러 교육 과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
a. 현재 국내 의대에서 평균적으로 기초의학교수 한 명당 담당하는 학생의 수는 20명 이상입니다. 이는 세계 기준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숫자입니다. (우리나라가 본래 기초의학 종사자가 적은 편인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인원이 갑작스럽게 2배씩 늘게 되면 산술적으로 사실상 기초의학교수 한 명당 거의 40명의 학생을 담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기초의학은 과목이 여러개로 나눠져 있다보니 (ex. 해부학, 생리학, 조직학, 생화학 (대사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면역학, 미생물학, 법의학, 의료관리학 (예방의학), 병리학, 약리학 등) 사실상 교수 배출이 적은 과목은 거의 교수 한 명당 80명까지도 담당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 모릅니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교육의 질에 문제가 생기겠죠. (정부는 기초의학 교수를 새롭게 고용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의학대학원에서 기초의학 자체를 전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상당히 힘든 길이 될 것 같습니다.)
b. 두 번째는 실습 자원의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건 당연히 기증된 시신의 수입니다. 카데바라고도 불리는 이 시신은 현재 거의 대부분 기증자분들의 감사한 의지로 마련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수도 그리 많지 않고 정량적인 공급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각 대학 해부학실은 최대한 매년 그런 유불리가 생기지 않도록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장기간 보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현재 카데바의 수는 굉장히 부족한 편입니다. 대형 의대들은 거의 10~15명이 한 구를 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원만 늘린다는 건 더 심각한 상태를 초래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실습을 위한 병원 시설, CPX, OSCE 등 실기 시험 준비를 위한 도구 등을 공급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도 힘든데 숫자가 더 늘어나면 더 힘들겠죠.
c. 가장 마지막 제일 큰 문제는, 이 인원이 평생 계속 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진급하고 함께 졸업합니다. 함께 인턴을 지원하고 레지던트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인턴, 레지던트의 숫자가 그렇게 갑작스레 빠르게 늘어나진 않겠죠. 즉, 이전 학번들에 비해 미친듯한 경쟁이 필연적일 것이란 뜻입니다.
d. 그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으나, 일단 그걸 쓰려는 건 아니니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5) 무튼, 이런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의과대학 자체에서도 여러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인원을 줄여서 뽑는 방법'입니다. 각 대학에서 자신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에 한계가 있기에 해당 인원까지만 뽑고 더는 뽑지 않겠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다만 이걸 하고 나면 그 다음해에 징벌적 '정원 감축'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입장에서 의료계에게 정원 감축은 징벌이 아니죠.)
6) 이렇게 된 경우 3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ㄱ. 4500명을 다 뽑는다.
ㄴ. 4500명 중 이전 학번 유급 인원 3000명을 제하고 1500명만 뽑는다.
ㄷ. 원래 인원인 3000명을 뽑는다.
ㄹ. 아예 뽑지 않는다.
=>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릅니다. ㄱ, ㄷ으로 가면 그 학번부턴 지옥이 열릴테고, ㄴ나 ㄹ으로 가면 지금 수험생들한테 지옥이 열리겠죠. 뭐로 가든 이번 수능에서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겐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 펼쳐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라인 자체도 괴상하게 변해버릴 테니 더욱 수험생들 입장에선 혼돈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정확한 결론이 언제쯤 발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한의대에서 단체 휴학을 했을 때는 수능 직전인 10월에 정원 감축이 발표되었다고 했는데, 현재는 수시가 있어서 수시 지원 이전에 최대한 빠른 시일에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수시 지원 이후엔 인원 변경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우, 인원 조절을 위해 26학번 입시에서 다시 인원 감축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9. 더불어, 의평원 재인증이 안 나오면 의대 자체에서 재인증을 다시 받기 위해 '합격했던 인원의 합격을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의평원과 비슷한 간평원 등에서 이미 이런 선례가 있습니다. 모 지방대학 간호학과가 간평원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자 결국 학교 차원에서 수시 합격자 전원의 합격을 취소한 적이 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의평원 인증이 안나면, 또는 의평원 인증을 무시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만든 '예비인증' 제도나 실행되거나, 정부의 의평원 개입을 통한 의평원 인증 기준에 변화가 생기면 해당 학교는 '국제 기준'에서도 어긋날 수 있습니다. 즉 해당 의대들은 WFME 등에서 나오는 인증 (ecfmg)을 받질 못하니 USMLE 등 해외 의사 면허 시험에도 제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 2026년 2월까지가 ecfmg의 유보 기간이기에, 그 이후에 졸업하는 학생들은 현재 재학생이어도 USMLE 응시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JMLE 등 다른 나라의 의사 시험 중엔 이런 기준이 필요없는 곳도 있습니다.)
11.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모를겁니다...... 다만, 이미 수험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데드라인은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그대로 뽑든 줄여서 뽑든, 모두에게 피해만이 남은 힘든 상황까지 와버린 것 같습니다. 많이 미안하고 또 애통할 뿐입니다. 그래도 부디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잘 완주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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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아무도 확답을 줄 순 없겠지만.. 유급 인원이 너무 많으면 증원이 이뤄지지 않은 서울권 의과대학이라 해도 모집에 제한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교육환경 등의 정당한 사유를 바탕으로 의과대학 교수 차원에서 모집을 일부 포기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9. 더불어, 의평원 재인증이 안 나오면 의대 자체에서 재인증을 다시 받기 위해 '합격했던 인원의 합격을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의평원과 비슷한 간평원 등에서 이미 이런 선례가 있습니다. 모 지방대학 간호학과가 간평원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자 결국 학교 차원에서 수시 합격자 전원의 합격을 취소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면 수시 정시 의대쓴 사람들은 그냥 억울하게 폭사네요
수험생분들 입장에선 이게 가장 억울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입시 지원을 문의해준 분들에겐 의대 외 메디컬 학과로의 지원도 고려해보라고 말씀드리곤 있습니다.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등등..)
특히 수시는 카드가 6장이나 되니 적절히 섞는것도 슬기로운 해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급하신 간호학과 입학 취소 전례에 대한 질문인데요
학교 등록후 취소 즉, 사실상 퇴학처분인건가요
아니면 등록기간 이전 합격을 취소하는건가요?
전적대가 있어서 후자의 경우 그냥 복학을 하면 되는데 전자의 경우 이중등록 불가하니 퇴학하고 등록하는 셈이라 저렇게 되면 좆되는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