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중 시민단체에 대한 소회
때는 중학교부터다.
중학교에선 내신이란 게 있고
그 내신에는 봉사활동도 들어간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고나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건
'수해복구... 지진복구... 의료봉사...'
당시 학교 필독도서였던 한비야 책을 읽으면서
봉사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험난하구나...
월드비전이란 단체가 있는데 가난한 국가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던 때였으니
'아... 내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물론 실제로는 꼭 거창한 봉사활동만 있는건 아니었다.
내가 직접 찾아야 해야한다만.
그 시절은 지금과는 다르게 1365라는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다.
봉사활동을 하려면 직접 발품을 뛰든지 전화를 하든지 수소문하든지
뭐 요새도 그런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관공서... 헌혈... 복지시설...
위에 나열한 곳에서 봉사활동은 해보긴 했다.
그러나 내가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어하던 곳은 따로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돈 욕심 없이 일하는 '시민활동가'들은 참 대단해."
지금보다 진보적인 색채가 강했다는 정도로밖에 회상하겠다만
시민활동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뭐... 어렸을 적 집에 있던 위인전 중
정대협이라는 단체가 할머니를 도와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단 내용을 보며
"시민활동이 때로는 정부보다 더 큰 일을 하는구나" 생각도 하긴 했으니까.
그중에서도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었기에
환경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환경단체에서 봉사활동 공고가 나왔다.
장소는 서울 어딘가 공원.
기쁜 마음으로 접수하고 시간이 지나서...
당일날. 공원에 나가보니 정말 소소하게 환경정화 활동이었다.
그냥 길가다가 쓰레기가 보이면 받은 비닐봉지에다가 그걸 넣는 활동.
"생각보다 별거 없네..."
끝나고 나니까 종이를 나눠주면서 그냥 오늘 봉사활동 소감문 쓰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소감문 쓰고 좋은 경험이겠거니 하면서 집에 귀가했다.
"OOO 학생. 지금 호명한 학생은 방송실로 오세요."
가보니 내가 봉사우수상이랜다. 그것도 2위.
상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살짝 얼떨떨하긴 했다.
뭐 찾아보니 환경부랑 친밀하게 움직이던 환경단체긴 했다.
"관제단체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뭐 어른의 사정이겠지. (주 : 저 당시는 2009년이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
한창 힐링이니 청춘콘서트니 하던 시절이었다.
뉴스에는 관제단체 이야기가 한창 나오기도 했고
알지도 못했던 시민운동가가 갑자기 5%에서 50%의 지지율로 수직상승해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2년 전에 봉사활동을 했던 단체에서 다시 공고가 났다.
"요즘 유행하는 수시 지원하려면 봉사활동도 하고 상도 받아야한다지...?"
뭐 했던 데에서 편하게 하고 싶겠다. 다시 신청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상식을 따로 한댄다.
시상식에 가서 단체 소개가 적힌 책자를 받아보았다.
책자를 읽어보니 당시 여당(현 야당) 원로 분들이 임원에 많이 있었다.
"시민단체가 정치권이랑 참 친밀하구나..."
스님 등 종교인들도 있길래 조심스레 네이버 검색창에 쳐봤다.
'OOO 후보 지지' 'ㅁㅁㅁ 후보와 콘서트...'
얼마 지나고 다음 정권으로 바뀐 뒤 그 단체의 활동은 멈춘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2015년.
그쯤 한비야는 수많은 비판을 받는 위치가 되어있었고
월드비전은 내부 비리 의혹으로 시끄럽던 때였다.
대신 한참 유니셰프 2만원 후원 열풍이 빛을 발하고 있었던 때였다.
신입생 영어시험을 치고 나올 무렵
책상에 노란 홍보지가 하나 있었다.
'평화나비'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림활동 하고 있으며 신입의 지원을 환영한다는 홍보지였다.
"좋은 일을 하는건 맞지만... 시민단체 활동보단 학교 적응과 학업이 더 중요하지."
강의실을 바삐 나와 첫 대학생활에 대한 꿈을 안고 집으로 갔다.
많은 시간이 흘러 2019년 겨울.
방학 계획을 세워보던 중 다시 봉사활동을 해보기로 생각했다.
(주 : 현실적으로도 몇몇 병원들은 봉사활동을 점수 항목으로 반영한다.)
어차피 의협 학술대회 봉사활동에서 16시간은 확보했으니
조금만 더 채워보자는 심정도 있었으니까.
겨울방학에 봉사활동을 했던 단체는 두 곳이었는데
모두 의료와 관련된 시민단체였다.
한 곳은 일 많은거 빼곤(-_-) 특이한건 없었다.
의대교수랑 적극 협력해야만 돌아가는 단체라 그런지...
나머지 한 곳은 사무실이 복도형 아파트에 위치했단 점부터 좀 특이했다.
사이비는 아니고 이름있는 단체 중 하나긴 했다.
뭐 찾아보니 회장이 십몇년 전
현 여당에서 보좌관 하셨던 경력이 있었다만
내가 맡은 일은 행정업무 보조였다.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하나는 구청에 보조금을 요청하는 서류 작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행사 후 비용청구 내역에 대한 관공서 피드백 사항 확인.
구청에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단체의 약력이나 활동 내용을 기재해야 했기에
폴더에 있는 사진과 일자를 대조해서
약력을 새로 기재해야 했다.
(물론 신청서 작성도 소위 말하는 '족보'가 있어서 플롯 붙여넣었다.)
사진과 일자를 대조하면서 작성하던 중
"OO캠프 사전답사" 폴더가 있길래 이게 뭔가 싶어서 열어봤다.
사진을 보니 사전답사랬는데
뭐... 잘 드시고 해외 관광지에서 기념사진도 찍으신 모양이었다.
폴더는 한 둘이 아니긴 했다.
끝나고 집에 가는 동안 그 신청서가 정말 눈앞에 아른아른거렸다.
세금이 '사전답사'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돈이 다른 데서 쓰인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기분이 썩 좋은건 아니었다.
그쯤해서 찾아보니 유니세프 한국지부도 이미 횡령/비리랑
내부고발자 해고로 말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진짜 어려운 사람을 후원하려면 시민단체가 아니라 차라리 직접 드리는 게 나아요. 구세군 운영비만 해도 얼마가 나가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현실의 나쁜 것마저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았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는 이미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정치권과의 유착... 후원비 유용... 사전답사...
몇달이 지나서 어느 날 아침
TV에 이용수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나는 정의연마저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큰 배신감까진 들지 않았다.
기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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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글 맛깔나게 잘쓰시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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